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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Story

 

 

  테오라가 움직인다는 소문이 성 내에서 돌기 시작했다. 왕좌를 버리고 뛰쳐나간, 가장 유능했던 플래그 진영의 후계자. 그 이름이 나왔으니 술렁거림은 덤이었다.

  날이 막 풀리기 시작한 어느 날, 봄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온 소문은 근원지를 알 수 없었음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후계자님께서 동료를 모아 반란을 꾀한다더라, 그런데 그 반란이 무릇 플래그 영지 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노린 규모라더라, 등등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대공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혼란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굳이 아랫것들을 제지할 필요는 없다고까지 덧붙였으니.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허투는 아닌 모양이었다.

 

  ‘많이 컸구나. 감히 나에게 선전포고라니.’

 

  어차피 내 손바닥 위에서 노는 아이인 것을.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참으로 재미난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데면데면 적당히 넘기고 세상 흐름에는 전혀 관심 없던 아들이 대륙을 뒤집어 놓을 반란의 주동자가 될 줄은. 하도 한량처럼 돌아다니며 속을 썩이는 통에 조금 경각심을 줬던 게 충격이 그렇게 컸나?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늘 엷은 미소를 걸고 다니는 것을 떠올린다면 퍽이나 드문 모습이었다. 그리도 소중한 이였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더욱 더 상처를 후벼파고,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음습한 진영의 분위기만큼이나 플래그의 대공은 뱀처럼 교활한 사내였다. 조금 더 일을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좋았기에 아이를 인질로 데려왔더랬다. 정신을 반쯤 놓고 도피생활을 하던 테오라가 끌려왔을 때 그는 또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땠더라. 그렇지, 홀연히 사라졌었다. 대공은 굳이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마지막으로 돌아올 곳은 이 곳이기에. 시간이 되면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 테니. 과연 그가 어떤 패를 준비해올 지는 조금 기대가 되었다.

 

 

* * *

 

 

  “펜윈! 드디어 꼬리가 밟혔어. 테오가 나타났어!”

  “…일부러 흔적을 흘린 거겠지.”

 

  오랜만에 찾아온 동료를 맞이하는 펜윈의 첫마디는 김빠지게 만드는 소리였다. 손을 붕붕 흔들며 달려온 게 무색해져 빌린은 과장된 행동을 멈췄다. 그 대신 비죽 웃으며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응, 이제 그 장식인 머리로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됐나 봐? 다행이야, 대장님.”

 

  명백히 놀림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펜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지만 움직임은 빌린 쪽이 더 빨랐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고는 펜윈의 머리를 툭툭 쓸었다. 탁 소리 나게 내쳐진 손에도 개의치 않고 다시 한 번 팔을 뻗었다.

 

  “자, 선물.”

 

  선물이라고 내놓은 것은 이름 없는 노란 꽃 한 송이였고, 장난스럽게 그것을 귀에 꽂아주기가 무섭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신발에 짓밟힌 꽃잎이 갈래갈래 찢어져 흙으로 더럽혀진다. 그 광경을 익숙하다는 듯 지켜보며 빌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여전히 농담도 안 통하고 성격도 나쁜 인간이었다. 장난은 이 정도로 끝내고 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테오가 차례차례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 같아. 특히 각각의 진영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말이야. 아무래도 불길해. 굉장히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빌린은 옆머리를 빙글빙글 꼬았다. 고위인사들과의 접촉,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일개 용병이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당혹스러웠고, 정보의 출처가 확실한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 사이에 여러 진영을 유랑하던 그녀는 반란이라는 단어를 꽤나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상황을 조합해본 결과 테오라가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물이라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정세와 관련된 인물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는 자신의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더 흔적을 쫓아가도 괜찮은 것일까.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서 손을 떼라고. 어쩐지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스스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란. 진위 여부를 떠나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영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펜윈은 얼마만큼 이에 대해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발화점이 낮은 인간이니 만큼 불분명한 추측으로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빌린은 여기서 발언을 끝내기로 했다.

 

  “알아온 건 이 정도. 그 쪽은?”

  “…최근 들어 익명의 암살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

  “하아? 어떤 미친놈들이? 의뢰 전에 용병단 성격부터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우린 사람 가지고는 절대 장사 안 해.”

  “알고도 찔러보는 거다. 어디든 걸려라, 는 심정이겠지.”

  “웃겨, 정말.”

  “이것도 관련이 있을까?”

 

  시기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이 테오라의 소식과 함께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단순한 우연일지, 아니면 연관된 사건들일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유기체처럼 엮여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들의 손을 한참이나 벗어난 판 위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차라리 단순한 우연이고, 자신들이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라 기우일 뿐인 게 훨씬 더 나았다.

  빌린은 풀썩 자리에 앉아 턱을 괴었다. 생각이 많아진 탓이다.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힐끗거리니 짓이겨진 들꽃이 유난히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다. 제가 꺾어오고 펜윈이 발로 찢어버린 것이었다. 단순히 장난을 치기 위해 가져온 꽃송이는 순식간에 처참한 꼴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였다. 빌린은 은인이었던 대장을 찾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렇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거대한 손이 조종하는 흐름에 같이 빠져버리는 기분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제 목을 아주 쉽사리 꺾어버릴 수 있는 손. 그 존재를 어렴풋하게 눈치 챘을 때에는 이미 너무도 멀리 와 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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