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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무리

 

 

* 개그전개 캐붕 주의해주세요

* 약간의 시모네타가 있습니다

 

 

  오전 6:00. 이츠키 슈는 매일 규칙적으로 기상하는 시간에 맞춰 정확히 눈을 떴다. 학교가 쉬는 날인 데다가 라이브 일정도 없는 완전한 휴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잠에 빠져들어 하루를 버리는 건 속물들이나 하는 짓이다. 슈는 그리 생각하며 이불을 벗어나 문밖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켰다. 저혈압 기미가 있는 탓에 잠에서 깬 직후에는 머리가 무거웠다. 방의 맞은편에 자리한 욕실에서 간단히 세면을 하고 부엌으로 내려간 슈는, 자신이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하는 의심에 눈을 찌푸렸다.

 

  " 오시상, 이제 일어났나? "

 

  미카의 목소리가 멍하게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슈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슈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심호흡을 하며 시야에 들어온 것을 애써 부정했다. 그래, 설마 카게히라가 이 시간에, 저런 모습으로 부엌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최근 피로가 과하게 쌓인 탓에 헛것을 본 것이다. 그런 슈의 생각을 부정하듯 코끝에 고소한 향기가 풍겼다. 갓 구운 크로와상의 풍미가 가득 깃든 냄새. 슈는 저도 모르게 눈을 뜨며 그 향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내, 오시상을 위해 만들었데이. 어떠노? "

 

  조리대에 놓인 반쯤 탄 크로와상과, 미카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던 슈는 마침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목에서 큰 소리를 토해내었다.

 

  " 농!!!!! "

 

  화들짝 놀라는 미카의 차림새를 슈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샅샅이 훑었다. 쭉 뻗은 다리가 눈에 들어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낸 저 치태가 다 뭐란 말인가. 팔과 쇄골마저 전부 노출된 몸에는 프릴이 수놓아진 흰색 천 하나만 덩그러니 걸쳐져 있었다. 조리할 때 의복이 더럽혀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입는 옷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봐도 미카의 모습은 알몸에 앞치마 한 장을 걸치고 있는 거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슈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시야에 또 다른 충격이 들어왔다. 조리대를 향해 몸을 돌린 미카의 맨들맨들한 등허리에서 커다란 리본이 엉덩이를 따라 둥글게 흘러내리는 광경이었다.

 

  " 카게히라, 당장... 당장 이걸 걸치라는 거다! "

 

  슈는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재해석한 유명 디자이너의 테이블보를 급하게 벗겨내서, 허겁지겁 미카의 맨 어깨 위에 둘둘 동여매었다. 미카가 응아앗, 하며 소리를 내는 것도 무시하고 그 몸을 꽁꽁 싸맨 뒤에야 겨우 슈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 오시상... 왜, 왜 그러노? 숨소리... 야하다아.. "

 

  " 농! 이 실패작이, 네가 바보같은 차림을 해서 화가 난 거라고!? "

 

  슈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미카는 손을 들어 빨개진 얼굴을 폭 가렸다. 그 바람에 또다시 맨다리가 드러나서, 슈는 풀려가는 테이블보를 팔까지 꽁꽁 둘러맸다. 그러고 나니 겨우 화가 치솟았던 머릿속이 조금 냉정해지는 듯했다.

본래, 미카가 부주의한 행동을 해 대는 건 슈로서도 익숙했지만 이런 황당한 짓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거기에, 아무리 미카가 저를 따른다 해도 지금처럼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고 있는 건 이상하기 그지없는 현상이었다. 평소의 미카답지 않은 행동에 슈는 머리를 짚으며 여러 가정을 생각해 보았다. 열이라도 있는 건가? 뭘 잘못 주워먹고 탈이라도 난 건가?

 

  " 응아아...? 오시상, 얼굴 너무 가깝데이..! "

 

  미카가 더욱 얼굴을 붉히며 어쩐지 눈을 꼭 감는 걸 무시하고, 슈는 제 인형의 이곳저곳을 뜯어보며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머리를 단단히 부딪친 게 아닌가 하고 머리카락을 헤집어 상처를 찾아보아도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다. 빈혈 증세가 있는지 눈꺼풀을 들여다보고, 목에 손을 대어 맥이 잘 뛰는가 확인해도 양호하게 느껴졌다. 혹시 또 밥을 제때 먹지 않는 건가 싶어 피부를 촉진해보면 영양실조로 거칠어진 흔적 없이 매끄러운 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 대체, 어디가 어떻게 고장난 거지, 응? 말해보거라 카게히라! "

 

  " 우우... 내, 아무데도 고장 안났데이? 오시상 오늘 좀 이상하재? "

 

  미카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 슈에게, 미카는 눈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듯이 몸을 기대왔다. 팔까지 꽁꽁 묶여 도롱이벌레 같은 모습의 미카가 슈의 품에 기대오자, 슈는 그대로 미카를 들어 의자에 앉히고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어떻게 봐도 이상한 건 카게히라란 거다! 대체 왜 그런 수치심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차림을 하고 있던 거냐?! "

 

  슈의 말에 미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응아... 그치만 오시상, 인형에게 수치심이 어딨냐고 그랬다 아이가. "

 

  그 말에 슈의 눈이 조금 주춤거렸다. 확실히, 슈는 처음 메인테넌스를 하던 때 옷을 벗기 부끄러워하는 미카를 향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 맨몸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니토 같은 완벽한 인형이라면 모를까, 미카는 스스로 다친 곳도 모르는 결함품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몸 구석구석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인형의 몸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데에 인간처럼 쓸데없이 부끄러워해도 거슬릴 뿐이다. 슈는 그래서 미카에게 한마디 한 거지, 당연히 평소에도 수치심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 그렇게 몸의 살을 드러낸 옷차림이라니, 천박하다는 거다. "

 

  슈는 평소의 냉정한 태도로 돌아가 미카를 꾸짖었다. 미카는 그제서야 이해한 것인지 고개를 떨어트리며 잘못했데이, 하고 중얼거렸다. 슈는 어서 방에 돌아가 제대로 된 옷을 입으라고 미카를 올려보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 차림으로 부엌에 있던 건지 이유를 모르겠으나 캐물을 정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슈는 그저 아까 전 미카의 난잡한 모습이 떠올라 쓸데없이 열이 치미는 게 더욱 거슬렸다.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솟아나 몸이 뜨거워지고 심박이 거세진다. 실패작이 그런 꼴사나운 짓까지 하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슈는 그리 생각하며 진정 효과가 좋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니 그제서야 그렇게까지 화낼 것도 없는 카게히라의 바보짓 중 하나였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정대로 그날 하루를 보낼 때만 해도 슈는 그 사건이 별 것 아닌 해프닝이라고만 생각했다.

 

***

 

  다음날 눈을 뜬 슈 앞에는 미카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가지런히 서 있었다.

 

  " 오시상... 내 어떠노? "

 

  또 이상한 꿈을 꾼 건가. 눈을 비비는 슈 앞에는 매끄럽게 떨어지는 옷감 하나 사이로 훤히 비치는 미카의 몸이 생생하게 들어왔다. 어깨선이 많이 내려가 손을 덮고 있는 소매가 슈의 눈에 익숙했다. 그 옷은, 분명 주문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는지 슈에게 조금 커서 옷장에 고스란히 내버려 둔 와이셔츠였다.

 

  " 카게히라아아!! "

 

  미카의 몸 아래로는 비치는 흰색 셔츠가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덮은 채로 끊겨 있었다. 그 새하얗게 드러난 다리를 확인한 슈가 찬물을 맞은 듯 잠에서 깨어나 소리를 질렀다.

 

  " 으아앗, 왜 그러노 오시상... 내, 내 귀엽지 않나? "

 

  " 카게히라 주제에 무슨 건방진 소릴 하는 거냐?! 그보다 그 차림새, 아아 천박해라, 대체 내 예술품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나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건가? "

 

  수줍은 듯 소매가 내려온 손으로 셔츠 밑단을 만지작거리는 미카에게 슈는 내쏘듯 다그쳐 말했다. 어디 입힐 것이 없나 둘러봐도 슈의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슈는 미카의 어깨를 붙잡고 침대로 던져넣었다.

 

  " 응아앗...? 오시상, 그건 좀, 과감하데이...! "

 

  미카가 얼굴을 붉히며 내뱉는 말을 무시하며, 슈는 그대로 미카를 이불에 돌돌 말아 롤처럼 만들었다. 몸을 꿈틀거리며 저항하는 미카를 단단히 제압한 뒤, 슈가 힐난이 담긴 시선을 제 인형에게 보냈다.

 

  " 카게히라,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해 봐라. "

 

  " 우우... 내, 귀여운 옷 입어서 예쁨받고 싶다.. "

 

  귀여운 옷? 미카의 입에서 나온 엉뚱한 소리에 슈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떻게 봐도, 하의를 제대로 걸쳐 입지 않은 복장은 귀엽다와 한참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런 천박한 차림은 보는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것 외에 아무런 용도가 없다고, 슈는 지금도 몸에서 느껴지는 강한 흥분감을 참아내며 미카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 예쁨받고 싶다고? 너 같은 실패작에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카게히라. "

 

  스스로도 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슈는 미카에게 차갑게 뱉어내었다. 미카의 눈에 침울한 기색이 떠오르는 걸 보고서도,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으응... 알고있데이... 그래서 노력, "

 

  미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 말을 냉정하게 끊으며 슈는 단단히 일러두었다.

 

  " 노력이고 자시고, 천박한 옷차림을 하지 말라는 거다. 하의를 입지 않는 문란한 것이 어떻게 귀엽다가 되는 건지, 네가 바보라는 건 알았지만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군. "

 

  슈는 그리 말한 뒤 돌돌 말아진 미카를 통째로 집어들어 방에 데려다주었다. 제대로 옷을 갖춰 입기 전까지 나오지 말라며 문을 닫자,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이불에서 빠져나오다 떨어진 것이겠거니, 하며 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예감이 안 좋군...... '

 

  슈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미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슈의 앞에 각종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물론 그 대부분은 반쯤 살을 드러내고 있는, 제대로 된 옷이 아니었다.

 

  " 내, 아랫도리도 잘 갖춰 입었데이? 이제... 귀여워해 주나? "

 

  " 농!!! "

 

  고양이 귀에, 여전히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짧은 치마의 메이드 복장을 한 미카를 향해 슈는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노성을 질렀다. 다리는 그나마 여러번의 지적 끝에 스타킹으로 가린 모양이나 그편이 더욱 슈의 심기를 자극했다. 아무리 혼을 내고 야단쳐도 고집스럽게 난해한 복장으로 나타나다니. 이제 뭐가 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슈의 시선에 미카의 허벅지에 떨어지는 싸구려 공단 프릴이 잡혔다. 스타킹에 감싸여 검게 빛나는 다리가 슈의 눈에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이것은 여성의 다리라고 해도 아름다운 축에 들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 너는, 그런 꼴사나운 복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냐?! 스스로 거울이라도 보라는 거다. 아무리 말랐다지만 네 체격으론 그런 여장 따위 귀엽게 보일 리가 없다는 거다! "

 

  슈는 생각을 떨치려 험한 소리를 뱉으며 미카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 바람에 허술하게 고정되어 있던 고양이 귀가 떨어져 내렸다. 심한 짓을 해 버렸다고, 멈칫해서 숨을 고르는 슈의 얼굴에 크게 뜨인 미카의 눈이 들어왔다.  그 눈이 바닥을 향하며 천천히 고개가 떨구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쥐고 있던 슈의 손바닥에 천이 바스락대는 감각이 느껴졌다.

 

  " ...으응, 내 안데이... 내 이제, 오시상이 입혀줬던 그런 귀여운 옷 입어도 안 귀엽데이.. "

 

  몸을 떠는 듯한 미카를 향해, 슈가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이 인형이 지금 우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슈의 손끝이 이상하게 저려 왔다. 그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나 슈의 초조한 심정과 달리 미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미카는 슈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어딘가 깊은 슬픔이 담겨 있어, 슈는 순간적으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붙잡고 있던 어깨에서 손이 내려갔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새에, 미카는 스스로 방을 나서고 문을 닫았다. 언제나 몸을 둘둘 감아 방에 갖다주던 슈도 오늘은 멍하니 붙박여 미카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 귀여운 옷이라니, 내가 언제 그런 옷을 입혀 주었다는 건지... '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아서, 슈는 안절부절 못한 채로 방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다시 문이 열리며 미카의 얼굴이 그 사이로 빼꼼 나타났다.

 

  " 내, 다음에는 꼭 오시상 마음에 드는 거로 해볼게... "

 

  " 아직 하겠다는 것이냐?! "

 

  이 실패작이! 집 내부에는 재차 이마를 감싸쥔 슈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

 

  " 저런. 무언가 피곤한 얼굴이군요. 슈. "

 

  " 뭐냐. 나는 요즘 기분이 저조하니까 그다지 귀찮게 하지 말란 거다. "

 

  점심 시간, 연극부 부실 앞을 지나치다 꽂힌 와타루의 말에 슈는 과도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 미카의 기행 때문에 슈의 컨디션이 무너지고 있었다. 혼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싫은 소리를 하는 쪽도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었다. 슈는 싱글벙글 웃는 와타루의 얼굴을 매섭게 바라보고는 곧 표정을 풀었다. 아무 잘못 없는 친우에게 괜히 짜증을 내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다. 그리 생각한 슈가 태도를 바꾸자마자 와타루가 즐거운 듯 입을 열었다.

 

  " Amazing을 즐깁시다. 슈. 복잡한 번뇌에 쌓여 있군요. 혹시 밤마다 귀여운 서큐버스의 습격이라도 받고 있는 걸까요? "

 

  " 서큐버스 따위 생체활동을 정당화시키려는 성직자들의 자기기만이잖아. 와타루. 속물들의 저열한 욕망은 하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고결한 척을 할 정도로 가치가 있지도 않다는 거다. 인간은, 어차피 신이 될 수 없으니까 말이지. 어째서 아름답고 완전한 육체가 될 수 없는 건지 그 한계가 분할 뿐이야. "

 

  " 이런. 당신은 신이지 않았습니까? 계속 이 세계의 신을 자칭해 주세요. 그편이 재밌답니다. 뭐어, 그런 당신도 무언가를 먹거나 자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인간의 욕구에 지배되고 있겠지만요. 그래서, 인형을 사랑하는 거겠지요. 순수하고 깨끗한 육신의 레플리카를. 하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야말로 완성되는 미도 있습니다. 당신도 그건 깨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슈. "

 

  " 흥, 완전한 모조와 불완전한 원본 그 어느 쪽에도 불멸성은 없다는 거다. 내가 추구하는 건 찰나의 미가 아니란 것을, 너라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보다 여기서 선문답을 계속하고 싶진 않다. 본론이 있으면 말하라는 것이다. "

 

  슈는 고개를 저으며 와타루의 말을 끊었다. 그와 대화하는 건 즐거우나 쓸데없이 빙빙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친우라면 같은 곳에서 헤매는 것조차 즐기겠지만 슈는 그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채근하듯 시선을 보내는 슈를 향해 와타루가 빙긋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 당신의 사랑스러운 인형이, 최근 이상해지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매일 슈의 앞에서 Amazing이 넘치는 코스프레를 한다거나. "

 

  " ......와타루. 무언가 알고 있나 보군? "

 

  " 물론 뒤는 완전히 추측이랍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

 

  와타루는 진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슈를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와타루를 쳐다보던 슈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 팔짱을 꼈다. 그는 지나친 쾌락주의자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으나, 의미도 없이 타인을 괴롭히는 인간은 아니었다. 슈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피네로 떠났다 해도 신뢰로 이어진 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슈는 그를 향해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네 마법인가? 네가 그 인형에게 무언가 이상한 수를 쓴 거라면,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군. "

 

  " 잊어버렸나요? [마법사]의 호칭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

 

  나츠메 군. 마법이 실패한 것 같다고, 보기 드물게 제 조언을 요청하러 왔었지요. 당황하는 나츠메 군은 오래간만이라, 즐거웠답니다.

 

***

 

  팔짱을 끼고 초조한 듯 발을 땅에 부딪히는 슈 앞에, 붉은 머리의 소년이 나타났다. 오기인의 막내 사카사키 나츠메, 그 얼굴을 본 슈의 표정은 평소에 그다지 볼 수 없는 부드러운 인상으로 녹아들었다.

 

  " 꼬마.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로군. "

 

  " 으응. 슈 형도. "

 

  묘하게 평소의 나츠메답지 않은 표정에 슈는 바로 와타루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치가 빠른 아이이니만큼, 제가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에 마음에 걸리는 게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주눅 들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하고 슈는 속으로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물론 미카의 상태를 생각하면 그 원인이 된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와타루의 이야기를 들은 한 고의도 아닌 데다가 상대가 나츠메였다. 거의 유일하게 화를 내기 어려운 상대에게, 따져 물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들어두고 싶었다. 그런 목적을 갖고 온 만큼 슈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 내 인형... 카게히라 미카를, 너는 알고 있을 터. 그것에게, 어떤 마법을 걸었던 거지? "

 

  " 읏... 역시, 슈 형. 그 일로 온 거였네. 와타루 형에게, 들은 걸까나... "

 

  주저하며 풀어놓는 나츠메의 말을, 슈는 하나하나 주의깊게 들었다. 와타루가 지인이 연관된 아르바이트에 나츠메를 소개했고 우연히 그곳에서 일하던 미카를 만났다. 같이 일을 하게 된 나츠메는 서먹한 공기를 누그러트리려다 미카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한 모양이었다.

 

  " 아아, 그냥. 예전부터 말한 거지만, 나는 슈 형의 인형들에게 약간 질투를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저 조금 자랑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슈 형이랑 같이 놀러간 얘기를 했을 뿐이라구? 별로, 화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

 

  거기서부터 무언가, 형을 두고 싸우는 동생들끼리의 말싸움 같은 형태가 되어서, 아르바이트 현장 감독에게 주의를 받은 나츠메가 원인을 사과하는 뜻에서 미카에게 마법을 걸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상황이 흘러간 것이었다. 처음에 와타루에게 전해 들었을 때는 나츠메가 마법을 걸어주고 미카가 그걸 받아들일 만한 경위가 슈로서는 영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것이라면 알 것도 같았다. 애초에 나츠메는 점을 봐주며 타인의 고민을 끌어내는 일에 익숙했고, 미카 또한 나츠메를 껄끄러워하긴 해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을 뿌리칠 정도로 모난 아이는 아니었다. 흐름을 납득한 슈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흐음.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은 그리 이상한 상태가 되고 만 거지. 사건 자체는 납득했다만. "

 

  " 슈 형. 그 애, 심각한 거야? 나도 자세히 모르지만 무언가 마법을 걸었을 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와타루 형에게 조언을 구한 거니까. "

 

  궁금한 듯 눈을 향하는 나츠메에게, 슈는 조금 멈칫하며 말을 골랐다. 미카의 상태가 이상해져서, 묘한 의상을 입고 매일 달라붙는다는 말을 연하의 이 아이에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누구라고 해도 말하기 싫은 문제였다.

 

  " 자세한 건 그다지 말할 수가 없다는 거다. 단지, 뭐랄까. 폭주하고 있다는 말은 해두지. "

 

  슈가 혀를 차며 말하는 말에, 나츠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으읏... 역시. 그,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법은 성공했어. 잘못된 게 아니라, 너무 잘 되어서 문제라고 할까... "

 

  " 흐음, 잘 되었다라? "

 

  의아한 기색이 역력한 슈의 목소리에, 나츠메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 내 마법...... 슈 형도 알겠지만, 와타루 형 같은 [진짜 마법]이 아니야. 대부분 과학의 힘을 빌린 트릭, 거기에 점성술을 배우며 익힌 심리 효과나 최면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

 

  거기서 한 박자 쉰 뒤에 나츠메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슈 형의 인형...이었지, 이것도. 평소에 스스로 인형이라고 자처하는 데에서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 애, 피암시성이 너무 강해. "

 

  " 카게히라가, 최면에 특히 약한 체질이라는 건가. "

 

  나츠메의 말에 슈는 어쩐지 납득이 가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보에게는 그런 게 잘 통한다고 하더니만은, 속으로 그리 생각한 슈가 한숨을 짓는 걸 나츠메는 어찌 받아들였는지 눈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 최면에 잘 걸린다... 로 안 끝난달까, 뭔가 마법을 걸 당시에도 상당히 고양되어있다는 감각을 받아서. 나도 걱정이 되어 와타루 형에게 찾아간 거라구. "

 

  그런 나츠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슈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세세한 것은 아직도 불명이나 대강의 의문은 풀렸다. 어차피 최면을 걸어서 이상해진 거라면 풀 방도는 있을 것이다. 슈는 그것을 물어보기 전에, 일단 가장 중요한 의문을 입에 담았다.

 

  " 꼬마. 그래서, 결국 카게히라에게 건 마법은 뭐였던 거지? "

 

  " 으음, 아마도 세 가지. 무언가 일이나 인간관계 면에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고민이 있는 모양이라, 기본적으로 [용기를 주는 마법]과 [솔직해지는 마법], 거기에 서비스로 [행복한 과거를 떠올리는 마법]을 걸었어. "

 

  " ......좋은 마법이로군. "

 

  " 우리들 스위치가, 나쁜 마법을 걸 리가 없잖아, 슈 형? "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는 고민에 빠졌다. 미카가 여전히 이상한 차림을 한다면 그때도 참을 수 있을까. 조금 자신이 없었다. 나츠메의 말을 슈는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마법은 어디까지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되고 싶은 모습이 되는 순간, 마법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 풀리게 된다고 한 말을. 카게히라의 소원은 대강 짐작이 간다. 과거에 한 번도 제대로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이 며칠 사이에 무수히 쏟아놓았다.

 

  ' 귀여움받고 싶다니... 대체 그것은, 무슨 생각인지. '

 

  미카에게 이때까지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았다는 자각은 있었다. 같은 인형이면서도 그를 대하는 슈의 태도는 니토나 마드모아젤에게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과거에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준 것을 반성하며 상냥하게 대해 주려고 해도, 생각대로 잘 안 되는 터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역시, 그런 인형을 귀여워해 주는 방법은 슈의 손에 익지 않았다. 인형사로서 다뤄왔던 그의 인형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카게히라 미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정반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본래, 그의 세계관에는 맞지 않은 것이다.

 

  ' 그래도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 소원이라면, 귀여워해 줄 수밖에 '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슈는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미카를 보면 귀여워해 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연 순간.

 

  " 오시상. 다녀왔나? 뭐부터 할래? 목욕? 밥? 아니면... "

 

  " 카게히라아!!! "

 

  눈 앞에 놓인 미카의 상태에, 슈는 한순간에 다짐을 날려버린 채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떻게 개조한 건지 앞섶이 다 벌어져 있는 데다가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미니 유카타 차림을 보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솔직해지고 용기를 얻으면 저런 옷을 입을 수 있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슈는 황급히 현관을 닫고 미카를 제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 최면이 잘 걸리다 못해 무의식의 영역까지 들어갔다고 했었나. '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술에 진탕 취한 사람이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마음의 욕망을 표출하는 상태와 비슷할 것이다. 용기는 만용이 되다 못해 무슨 말이든 내뱉게 되고, 솔직함은 마음을 드러내다 못해 수치를 모르는 노출광이 되어버렸다. 미카의 경우 겉으로 의식이 명료해 보인다는 게 더 질이 나빴다. 슈는 미카를 일단 방 안에 밀어 넣은 뒤에 문을 걸어잠그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 우우, 오시상... 여, 역시. 내부터...? "

 

  " 시끄럽다는 거다. "

 

  이쯤 되면 슈도 상당히 익숙해져서, 냉정하게 미카의 말을 잘라냈다. 그러고 보면 옷차림도 옷차림이지만 미카의 이런 태도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무언가, 소꿉놀이 같은 짓을 한다 싶으면서도 그 선을 아득히 넘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무의식에서 어떤 사고가 펼쳐지고 있는 건지 머리가 아파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슈가 머리를 싸매는 동안 미카는 슬금슬금 슈의 곁으로 다가가서 어깨에 몸을 기댔다.

 

  " 오시상... 내 이제 괜찮나? 귀엽나? "

 

  " ...하아, 카게히라... ....... "

 

  슈는 몇 번인가 말을 하려다 말고, 눈살을 찌푸리며 미카의 몸을 바라보았다. 저 다리, 저렇게 목선과 가슴께를 다 내어놓고 뭐하는 짓인지 한숨만 푹푹 나왔다. 재질조차 싸구려라 가까이서 보니 속살이 훤히 비춰 보이기까지 했다. 역시, 저런 얼빠진 차림을 하고 있는 인형에게 귀엽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 지나치게 열이 모여서, 슈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얼굴 앞으로 모은 채 가만히 숫자를 세었다.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귀엽다고 말해 줄 수 있을지 짐작이 안 되었다. 저런 싸구려 의복을 걸치라고 있는 몸이 아닌데도. 당장에라도 저 천을 찢어발겨 버리고 싶은 생각에 손이 조금씩 떨렸다.

 

  " 차라리, 벗겨버리는 게 낫겠군...... "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슈는 당황한 채로 미카를 바라보았다. 분명, 딱히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미카를 점검하며 맨몸쯤이야 수없이 봐왔고, 그런 인형의 몸에는 딱히 어떤 감상도 욕망도 들지 않았다. 저런 천박한 차림새로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나 왜 저 몸을 평소처럼 꽁꽁 둘러주기보다 젖힐 생각을 했는지 슈 자신도 조금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 버, 벗으라니... 내, 내 그러면... 책임져 줘야 한데이... "

 

  옷깃을 부여잡으며 수줍게 뺨을 붉히는 미카의 모습이 슈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렇게 바보같이 구는 것만은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며, 슈는 마음속에 매여있는 열을 털어내듯 냉정한 목소리를 뱉어내었다.

 

  " 네가 내 앞에서 벗은 건 수도 없이 있었던 일이잖아. 새삼스럽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거다? "

 

  어쩌면,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슈는 지금 자신이 평소대로 미카를 둘러싸서 제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저런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는 것은 아닐 텐데, 어째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차라리 메인테넌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나을지도 모른다. 벗겨 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저 옷차림 때문에 쓸데없이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우우.. 오시상... 부드럽게... 해도... "

 

  " 메인테넌스니까, 조용히 하라는 거다. "

 

 

  미카의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로, 한번 숨을 들이킨 슈가 미카의 의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유카타에 매여 있는 끈을 풀고, 이미 벌어져 있는 앞섶을 더욱 벌렸다. 하얀 속살이 드러날수록, 슈는 몸에 차오르는 열감에 혀를 차며 신중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 심미안, 이라는 게 있다.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신의 축복이지. "

 

  슈는 미카를 향해서, 그러나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 대상의 본질을, 그 안에 담긴 미감을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눈이란 거다. "

 

  슈의 목소리와 함께 미카의 몸에 녹여내듯 스민 손길이, 왼쪽 옷자락을 완전히 젖혔다. 드러난 반신을 바라보고 슈는 또 한번 한숨을 쉬었다.

 

  " 네게 담긴 미는, 나에게 죄악이다. 내 세계에 독을 부어서 파괴시켜 버리는 금기라는 거다. 그것을... "

 

  어째서 품에 들였는지 알 수가 없다, 슈는 그리 중얼거리며 오른쪽 옷자락을 마저 젖혔다. 소매만 끼워진 채로 몸이 거의 드러난 미카의 몸이 하얗게 반짝였다.

 

  " 오시상이 하는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데이... 내, 그러면 안 귀엽나? "

 

  풀죽은 듯이 말하는 미카를 향해, 슈는 그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이어 한쪽 손으로 허리를 껴안고, 소매를 천천히 벗기며 슈의 말이 이어졌다.

 

  " 너는, 네 몸에 담긴 그 파괴력을 실감하지 못하지. 제대로 보는 눈이 없는 자들은 짐작조차 못 할거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말이다. "

 

  손끝에 옷자락이 걸린 채로, 대부분이 드러난 나신을 슈가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른 몸은 뼈의 굴곡이 드러나 피폐해 보이면서도 극도의 조형미가 있었다. 얇은 근육들 사이로 조여든 허리는 위태롭게 꺾이고, 몸의 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둥글어 기묘한 부조화를 자아낸다. 흠결 하나 없는 피부는 창백한 시체와 갓 태어난 아이의 느낌을 동시에 지녔다. 그 이미지란 마치 가시와 독을 품고, 뒤틀린 채로 화려하게 피어난 꽃과 같은 것이었다.

  이색의 눈도, 불길함이 깃든 머리색도, 이목구비의 조형까지 어느 하나 슈의 심안을 강렬하게 찌르고 들어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육신에 깃든 영혼이 카게히라 미카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어리숙한 인격이 그 나신에 담긴 퇴폐미를 지우지 않았다면 이츠키 슈는 그것에 결단코 손을 대지 않았을 터였다.

 

  언젠가, 미카를 발견하고 그를 제 세계에 들인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슈는 그림자 속에 깊이 자리해 있었던 욕망을 맞닥뜨려야 했다. 미카의 육신에 깃든 미가, 그 파괴적인 정욕의 심상이 슈의 영혼을 흔들었다. 꿈에서 슈는 그 나신을 안고, 입을 맞추고, 시체처럼 미동 없는 몸속에 자신의 욕망을 쏟아부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몸에 대한 한계를, 제 불완전함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몽정을 깨달은 슈는 낭패감에 휩싸여 제 곁에서 바보같이 웃는 미카를 쳐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이 미숙한 시절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책이었다.

 

  " 네가 카게히라여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것을, 겨우 나의 인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인형의 육체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

 

  슈는 그리 말하며 실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모습의 미카를 바라보았다. 미숙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인형사의 눈으로 그 육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안에 담긴 위험한 아름다움을 깎아내어 조각할 수 있도록, 제 손에서 빚어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카게히라 미카는 슈의 손 안에서 백지와 같은 인형이 되었다. 그의 맨몸은, 아무 심상도 가지지 않은 인형의 순수한 몸이어야 했다.

 

  ' ......이런. '

 

  그러나 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인테넌스로 충분히 눈에 익었을 육체가, 아무렇지도 않을 그 몸을 보아도 열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날뛰어대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엿보았던 정욕의 그림자가 미카의 몸속에 여전히 깃들어 있었다. 그제서야 슈는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지금 인간으로 추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슈는 나츠메와의 대화를, 그 마지막 말을 다시 떠올렸다.

 

  - 그런데 슈 형. 어째서 나에게 찾아온 거야? 나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와타루 형에게 조언을 구했어.

  - [마법]에 걸린 인형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치만,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하잖아.

  - 인형에게 어떤 강력한 마법보다도, 암시보다도 강한 건 인형사의 말 아니었어?

 

  ' 아무래도... 나는, 카게히라가 그 치태를 보인 순간부터 인형사로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지. 자신의 피조물에게 흔들린 신의 말이 제대로 힘을 가질 리가 없었던 거다. '

 

  슈 자신은 계속 부정해왔다. 미카의 바보같은 기행에 자신이 반응한다고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슈가 느낀 정욕은 엄밀히 말하면 카게히라 미카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저리 바보같이 눈을 꼭 감고 있는 미카에게 그런 짓을 하고 싶다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위험한 것은 오직 슈의 예민한 눈에 들어온 그 육체의 아름다움 뿐이었다. 그러나, 분명 인형사인 자신에게 종속되었을 아름다움이 엉망으로 풀려난 것은 미카의 행동 탓이다. 아무리 육신과 영혼을 나누어 보아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이츠키 슈는 카게히라 미카를 인형으로 볼 수 없었다.

 

  " 그러면 이렇게 해도 안 되나? 내 바보니까, 그런 내도 알 수 있게 사랑받고 싶다... "

 

  미카가 몸에 가까이 달라붙어서, 슈는 인상을 쓰며 그 어깨를 잡았다. 그 위험한 몸에, 천진하게 떠오른 표정을 보자 슈의 내면에서 강렬한 충동이 몸을 채웠다. 이것은, 정당한 보상이다. 손을 뻗어도 죄악이 되지 않는다. 카게히라 미카의 영혼을 위해 드러내선 안 될 욕망이 지금 용서받았다. 미카 또한 같은 것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무의식은 인간이 되기를 원해서, 안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슈에게 미카의 말이 한번 더 꽂혀 들었다.

 

  " ...사랑해주면 안 되나? 내, 실패작이어서 안 되나...? "

 

  슈는 눈을 한번 감고는,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떨어진 입에선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사랑은, 순간적인 욕망이 아니란 거다. "

 

  그리 말하며 슈는 손을 한번 쥐었다. 카게히라가, 애정을 바라고 있다. 이성이 거의 지워질 것 같은 지금이라면 그렇게 해 줄 수 있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되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에게 지금까지 주지 못했던 알기 쉬운 애정을 줄 수 있었다. 슈 또한 당장에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도 슈는 그리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인형들을 사랑했다. 비록 상냥하게 대해주지 못했어도, 심하게 대했다 해도, 카게히라 미카 또한 그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슈는 미카를 자신의 인형으로 만들었다. 그를, 아름다운 천국에 영원히 보존하고 싶었다.

 

  " 카게히라가 원하는 것은, 줄 수 없다. 그건 내 사랑의 방식이 아니야. "

 

  슈의 말에 미카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슈는 다음 말을 이었다.

 

  "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건 카게히라 또한 추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 본질을 얼마나 가리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네가 입은 저속한 의상이, 너를 내 인형으로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

 

  슈는 그리 말하며 미카의 앞에서 등을 돌렸다. 지금 치솟는 욕망에 몸을 맡긴다면 지금껏 슈가 쌓아온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카게히라 미카를 향한 사랑이 열화되고 만다. 품 안에서 숨을 토하고 헐떡이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이상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모형정원 속의 거짓된 영원이라고 해도.

 

  " 카게히라. 다시 내 인형이 되어라. "

 

  슈는 몸의 충동을 떨쳐내며 다시금 그의 인형에게 다가갔다. 열기에 녹아서, 금방이라도 미카를 쓰러트릴 것 같은 감정을 씹어 삼키면서. 그 손에는, 옷장에서 꺼낸 미카의 예전 유닛복이 들려 있었다. 슈는 그 의복을 미카의 몸에 천천히 입히기 시작했다. 미세한 차이이나 지금보다 치수가 조금 작은 탓에 단단한 천이 미카의 몸을 조이듯이 달라붙었다. 발키리의 의상, 몸에 정확하게 밀착하는 그 옷이 미카의 몸을 구속하듯 채워져 갔다.

  미카의 허리에 벨트를 조이며, 슈는 그 어깨에 대고 한숨을 쉬었다. 이 독을 품은 육체는 아름답고 정교한 의상 안에 빈틈없이 채워 넣어졌을 때에야 지고의 에로티시즘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외설과의 경계에서 자신만이 그것을 완전한 예술로 빚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성립된 세계에는 슈 자신과 미카만이 존재해, 영원을 꿈꾸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이츠키 슈의 사랑법이었다.

 

  목에 타이를 매어주고, 그 귀에 깃털 귀걸이를 매다는 동안에도 미카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슈가 가볍게 그 뺨을 손으로 쓸어줄 때에야, 꿈에 빠진 듯한 아름다운 눈이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슈는 옷 소매로 돌아가서, 손바닥까지 가리는 안쪽 소매의 벨트를 하나씩 채워 주웠다. 마지막 벨트를 채우자, 미카의 온몸이 의상으로 완벽하게 휘감겨 얼굴과 손가락 외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겨우, 슈는 자신의 몸에 치솟았던 열망이 제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형사는 미카의 손을 들어 드러난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 나를, 인간으로 추락시키지 말라는 거다. 내 사랑스러운 인형. 내 귀여운 카게히라... "

 

  그제서야, 미카는 얼어붙은 얼굴에 꽃이 피듯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

  - 카게히라. 다시 내 인형이 되어라.

 

  단단하고 큰 손이 몸에 닿는 순간, 미카의 의식은 또다시 눈부시게 빛나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 귀여워...... "

 

  눈을 부드럽게 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소년의 모습이 미카의 시야 한가득 들어왔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세계는 이 사람의 미소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강렬한 확신이 미카의 마음속에서 새어 나왔다. 따뜻한 손의 감촉이 언제까지고 떠나지 않을 것처럼 미카의 머리 위에 남아있었다.

 

  ' 귀여운 옷... '

 

  거울 속에서 미카의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몇 가닥씩 물결치며 어깨를 타고 떨어졌다. 소매에 수놓아진 프릴도, 춤추듯 나풀대는 레이스도, 화려하게 펼쳐진 치맛자락도. 눈 속에 똑똑히 새겨졌다. 그 귀여운 옷이 작은 몸을 감싸고 내려와 거울 속에는 마치 잘 만들어진 실물 사이즈의 소녀 인형이 서 있는 것 같았다.

 

  ' 나, 여자애 아닌데... '

 

  그래도 미카는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받은 옷은 무척 부드럽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태어나서 다시는 이렇게 귀여움받을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아마도 그때 처음 깨달았을 것이다.

 

  " 흥. 저것들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 없어. 인형이야말로 이렇게 완벽한데도. "

 

  아직 유아 티가 남은 분홍 머리의 소년이 그보다 더 작은 미카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 감촉이 미카의 온몸에 퍼져 행복감에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따뜻한 방 안에서 소년이 이끄는 대로 몇 번을 안기며, 그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걸 느끼며 미카는 말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 난 커서도 인형이랑 결혼할 거야. 인간들은 날 이해 못 해. 너는 귀여운 인형이니까... "

 

  " 나중에, 커서 결혼할까. "

 

  지나가듯 한 소년의 말에 미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이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을 여자애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런 건 미카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다음 순간 미카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검게 바뀌었다.

 

  - 싫어!! 저건 내 인형이다. 왜 뺏어가는 건데, 이 아무것도 이해 못하는 잡배들이!

  - 슈군, 슈 군... 저 아이는 인형이 아니야, 어른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거야...

 

  같이 있던 시간은 얼마쯤일까, 아주 순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다른 인형이 손에 들어오면 금세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미카는 마지막에 들은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하기 위해서, 그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눈을 감지 않았다.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가며 뒤돌아본 마지막 소년의 얼굴은 분한 듯이 울고 있었다. 미카는 울지 않았다. 다만, 이제 행복한 세계는 끝났구나. 그런 당연한 납득이 마음 속에 어둡게 퍼져나갈 뿐이었다.

 

  ' 오시상... 왜 기억 못해주노? 내 이제 귀엽지 않아서 하나도 안 똑같아서 기억 안나나? '

 

  어두운 세계 속에서 미카의 마음에 파동이 일어났다.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던지듯, 그렇게 던져진 돌이 밑바닥 깊숙이 가라앉은 진창 같은 감정을 휘감아 올렸다.

 

  ' 내, 예전처럼 귀여움 받고 싶데이. 오시상은 내만 안 귀여워하재? 내 실패작이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슬프다... '

 

  ' 옛날에는, 내 귀여웠을 때에는 오시상 내보고 결혼하자고 해줬데이. 가족이, 되자고 했었데이... 그런데 이제 안 된다 아이가... '

 

  ' 이제 여자애처럼은 안 보인다. 내는 나즈나 형보다 훨씬 더 자라버렸데이. 작지도 귀엽지도 않아서, 인형으로는 완전히 실패작이다... '

 

  ' 사랑받고 싶다... 내도, 내도... '

 

  깊은 진창 속에 파묻힌 채로, 기억도 현재도 혼재된 채로 미카는 열심히 꿈꾸었다. 귀여운 인형이 되고 싶다는 열망만을 가슴에 품은 채로. 이대로 계속 잠기다 보면, 언젠가 바닥에 닿게 될까. 힘내다 보면 귀여운 인형이 될 수 있을까.

 

" 너는, 역시 상상도 못 할 바보로군. "

 

" ......오시상? "

 

심연으로 가라앉던 미카의 의식이 돌연 차가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어쩐지 긴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저었다. 미카의 시야에 슈의 얼굴이 가까이 들어왔다. 단단한 팔이 몸에 감겨 있는 것까지 깨달은 미카가, 그 다정한 품을 향해 힘을 뺀 채로 안겨들었다.

 

  " 카게히라는, 이 내가... 선택한 인형이라는 거다. 당연히, 나는 너를... "

 

  슈는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몸을 떼어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미카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저 안아주었다는 사실이 기뻐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멍한 기억 속에서 언제 들었는지 모를 말이 미카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 내 사랑스러운 인형, 내 귀여운 카게히라...

 

 

***

 

  슈는 씁쓸한 심정을 느끼며 깨어난 미카를 바라보았다. 활짝 웃은 뒤에 정신을 잃어버린 미카를 돌봐주고 있자니 드문드문 잠꼬대 같은 말이 들려왔다. 사랑받고 싶다고, 왜 귀여워해주지 않느냐는 말에 한쪽 가슴이 갑갑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카게히라에게, 그렇게까지 애정을 주지 않았단 말인가. 슈가 그런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미카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오시상... 근데 내 왜 누워 있었노? ...뭔가 했나? 하나도 기억 안 난데이... "

 

  " 됐어, 쓸데없이 그런 걸 기억할 필요 없다는 거다. "

 

  제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슈는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최근 내도록 곤란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모든 걸 다 잊었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며 안도하려는 찰나, 슈의 귀에 의아해하는 미카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 내, 막 오시상에게 귀여운 옷 입고 보여주지 않았나? "

 

  " 그것들의 어디가 귀여운 옷이라는 거냐?! "

 

  소리친 다음에야 슈는 아차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꿈이라고 얼버무리는 편이 좋았을 텐데. 미카의 그 이상한 기준 때문에 저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분명 미카의 그런 상태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린 뒤에도 이러다니. 혹시 아직 최면이 안 풀린게 아닌가 하고 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미카를 바라보았다.

 

  " 또 그런 한심한 꼴을 하고 돌아다닐 셈은 아니겠지? "

 

  " 우우... 안할거데이? 그때는 어째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내도 지금 생각하니 억수로 부끄럽다 아이가... 그치만 옷은 귀엽지 않나? 쪼끄맣고 팔랑팔랑한게... "

 

  " 너는, 내 의상을 보면서도 안목이 전혀 성장하지 않은 건가. 정말이지... "

 

  고개를 젓던 슈는 문득 어떤 생각에 미쳤다. 그러고 보면, 대체 그 각종 의상은 어디서 났단 말인가. 미카가 그런 옷을 직접 만들 정도로 재봉 실력이 좋지는 않았다. 딱 봐도 저가 양산품이라는 느낌이었으나, 매번 돈이 없다고 말하는 미카가 그걸 어떻게 산 건지도 의문이었다.

 

  " 의상 말이가? 그거, 내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얻었데이. 거기에 이런 옷 엄청 많다 아니가. "

 

  " 뭐, 뭣!? 카게히라, 대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니는 거냐?! "

 

  슈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굳었다. 어떻게 봐도 반쯤 살을 드러낸, 제대로 된 의복이 아닌 것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많다니. 지금까지 본 미카의 각종 코스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스로리, 고양이귀 메이드, 바니걸, 차이나드레스, 세라복... 그런 복장이 많은 곳이라면, 혹시 불법 업소 같은 데서 잡일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설마. 그러고 보니, 그런, 그런 난잡한 것들을 카게히라가 어디서 배워 온 것은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한 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카게히라! 당장 지금 일하는 곳을 말하라는 거다! "

 

  " 응아아, 오시상 왜 그러노? 그러지 마라아..! "

 

  방 구석에서 도끼를 주워든 슈를 보고, 미카는 허겁지겁 슈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슈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으로 화가 차 있어 미카가 말리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카게히라가 그런 이상한 업소에서, 그런 옷을 입고 일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 생각만 해도 머리에 열이 뻗쳐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 그런 속물들에게, 카게히라의 그런, 그런... "

 

  천박한? 부끄러운? 꼴사나운? 순간적으로 슈는 그 광경에 어울리는 말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아 주춤거렸다.

 

  " ...귀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거다아아!!! "

 

  아니, 말이 헛나온 것이다! 카게히라가 자꾸 귀엽다 귀엽다 바보같은 소리를 하니까! 슈는 그리 말하려 입을 뻐끔거렸으나, 오히려 더 당황한 탓에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 에헤헤, 오시상 역시 귀여웠나? 내, 내 그럼... 부끄럽지만 노력 해볼게... "

 

  " 농!!! "

 

  이래서야 똑같지 않냐고, 슈는 머리를 짚으며 또다시 탄식을 외치고야 말았다.

 

***

 

  " 정말이지. 그게 그 아르바이트였던 건가. "

 

  슈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미카가 한 아르바이트의 정체는 저번에 나츠메가 소개받았다던 그 일이었다. 와타루의 지인이 일하는 파티용품 공장이 도산하는 바람에 창고 정리가 필요했다는 모양으로, 불건전할 것도 뭣도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르바이트였다. 미카가 수예 연습용으로 버리는 의상을 박스채 받아온 게, 전부 섹시 코스튬이였다는 게 큰 문제였지만.

 

  "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거다... "

 

  조잡한 의상에, 미카의 바보같은 행동들. 아무리 그 육신에 매혹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오히려 본연의 미를 해쳐버리는 차림새에 가까웠을 터. 어째서 그런 저급한 모습에 반응해버리고 말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슈의 곁에, 미카가 살금살금 다가와 앉았다.

 

  " 오시상, 괜찮나? "

 

  " 아아, 카게히라 탓에 자괴감이 든다는 거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카게히라 때문이야. "

 

  슈는 괜한 심술을 부리며 곁에 기댄 미카를 힐끗 바라보았다. 걱정해 줬는데 너무하다고, 볼을 부풀리고 삐진 듯한 태도를 보이는 미카를 보자 괜히 더 기분이 거슬렸다. 슈는 그 볼에 넣은 바람을 손으로 잡아 눌렀다. 미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벗어나자, 이번에는 조금 오기가 생겨 그 몸을 팔 안으로 끌어넣었다.

 

  " 우우, 왜. 왜 그러노. 갑자기 안아주고 이상하데이...? "

 

  " 이건 안아주는 게 아니라 붙잡는 거다. 그것도 구분 못하는 건가. "

 

  슈는 그리 말하며 미카의 고개를 제 어깨로 끌어당겼다. 언제나, 미카를 대할 때면 슈의 평정심이 쉽게 무너졌다. 본래 예민한 성정에다 입이 험하긴 했어도 유독 그에게만 몇 배는 성질을 부리게 된다. 같이 있자면 침착해지는 옛 친구들과 미카를 대하는 것을 비교하면 거의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기도 했다. 어째서, 이 인형에게는 그리도 주체가 안 되는 걸까. 아름다워서 품에 안았고, 소중하니까 엄격하게 대하고, 분명히 사랑하고 있을 텐데도. 슈가 한숨을 내쉬며 미카의 몸을 더욱더 단단히 잡았다.

 

  " ......카게히라는, 내가 좋은가? "

 

  " 당연한 걸 다 물어본데이... 오시상 말고 내가 누구 좋아하겠노? "

 

  " ...대체, 나를 왜 좋다고 따르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가는군. "

 

 

  분명, 미카를 껴안았을 때 이 몸속에서 치솟는 감정은 일반적인 사랑과는 조금 달랐다. 어딘가 날카롭고, 소란스럽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다. 슈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조마조마한 것이, 꼭 짜증에 가깝다. 그러나 그보다는 더욱 안타까워 참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 오시상... 그거 기억나나? "

 

  미카가 우물쭈물 거리며 슈의 품속에서 작게 종알대었다. 슈는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며, 어딘가 애가 달아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는 양을 보고 있자면 손끝이 간질간질해서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트집을 잡아 이것저것 지적하게 된다. 인형이니까 눈에 거슬리는 걸 지적하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슈는 그리 생각하며 미카가 꼼지락거리는 손을 눌러 잡았다.

 

  " 정신 산만하다. 조금이라도 얌전히 있지 못하는 건가. "

 

  슈에게 손이 잡힌 미카는 입가를 느슨하게 풀며 웃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다 망가진다고, 슈는 몇 번째일지 모를 지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웃지 않는 미카를 상상할 수가 없음에도.

 

  " 오시상. 오늘 이상하게 상냥하데이? 뭐 어디 아픈 거 아이재? "

 

  " 너에게는, 그렇게 대해 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단 거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실패작이, 내 손에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 "

 

  슈는 눈을 감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인형사의 손으로, 카게히라 미카를 완벽한 인형으로 만드는 데에 실패해 버렸다. 그의 육체를 종속시켰을지언정, 정작 그의 영혼은 지금까지도 지배할 수 없었다. 찢겨지고 부서진 날개를 지니고 온 까마귀를 단지 겉모습만 고쳐주었을 뿐. 재료부터 금이 가 있던 이 인형을 결국 실패작으로 만든 건 자신의 미숙함 탓일 터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패작은, 언제까지고 완성되지 않아서 품에 끌어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그거 역시 기억 안 나나? "

 

  미카는 다시 한번 여러모로 생략된 질문을 슈에게 던졌다. 올려다보는 미카의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주다가, 손이 닿는 타이밍에 눈을 꾹 감는 미카를 보자 가슴께가 간질간질해져 왔다. 그 감각이 거슬려서, 슈는 인상을 찡그리며 미카에게 조용히 화를 냈다.

 

  "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부터 하거라.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지. "

 

  " 그, 옛날에... 있재... 오시상, 내 못 봤나? "

 

  미카의 말에, 슈는 눈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짚어봤다. 미카는 가끔 비슷한 것을 묻곤 했다. 그러나 슈로서는 도저히 짚이는 게 없어, 항상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한 번 물어본 걸 잊어버려서 계속 묻는 건가 싶었지만, 이쯤 되니 정말 예전에 서로 만난 적이라도 있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저리 눈에 띄는 것을 과거에 보았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도. 슈는 표정에서 힘을 풀며 간단히 대답했다.

 

  " 너처럼 별난 것을 본 적은 없다는 거다. "

 

  " ......그렇나? "

 

  언제나, 슈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던 미카는, 오늘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 내, 그럼 어디 가 버려도 기억해 주나? "

 

  " ......나는 지금, 카게히라를 붙잡고 있다고 했어. "

 

  슈는 그리 말하고는, 답지 않은 말을 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이 인형이 언젠가 품에서 떠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잊을 리가 없었다. 이런 것을, 생애에 단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유별나고, 눈을 뗄 수 없어서 어떻게 해도 애가 타고 마는 이 실패작을.

 

  " 에헤헤, 내 그러면 귀여움 안 받아도 좋다. 계속 오시상 곁에 있으면 뭐든 상관없데이. "

 

  미카는 그리 말하며 슈의 품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어리광 부리는 주제에 무슨 소리냐고, 슈는 혀를 차면서도 미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단지 귀여울 뿐인 인형이라면 그렇게 마음속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카게히라 미카는 슈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그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혀 있었다. 분명 바보 같고, 부주의하고, 말이라곤 죽어라 안 듣고, 귀찮기 그지없는 인형이라서, 그 영혼을, 그 아름다운 육신에 깃든 불안정한 조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그렇다고, 뭐어, 전혀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

 

  " 오시상. 근데 내 진짜 안 귀엽나? 내, 쪼끔은 귀여운 거 같지 않나? "

 

  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미카가 그 품 안에서 아름다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슈는 그 대답으로 언제나 그랬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한숨 같은 목소리를 뱉어내었다.

 

  " 너 같은 실패작이, 그렇게 귀여울 리가 없다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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