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 청
1.
스승님, 나 결혼해.
쌀쌀한 어느 봄날, 갑작스럽게 슈를 찾아온 카게히라 미카의 첫마디였다. 슈는 제 귀를 의심했다. 상상도 못한 단어를 들은 탓에 대답할 타이밍조차 놓쳐 버렸다.
“일단 들어오너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미카를 들이자 그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슈는 미카를 거실에 두고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에서 찻잔 두 개를 꺼냈다. 누군가가 집에 온 일은 실로 오랜만이라 두 명 분의 차를 준비하는 일이 낯설었다. 예전에는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건만.
마지막으로 얼굴을 직접 마주한 건 언제 즈음이었더라. 1년? 2년? 지독하리만큼 항상 함께 붙어 있던 고교 시절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지냈다. 정확히는, 슈가 일방적으로 미카를 피해왔다.
정상 궤도에 서 이름을 날릴 무렵 카게히라 미카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두 사람이 함께 아이돌로서 지낸 유닛이 해체되고, 슈가 프로듀서로 길을 바꾼 뒤에도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던 미카가 갑자기 활동을 중지하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벌써 3년 전 일이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본의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와 안면을 트고 지내던 주변 동료들 역시 의문을 표했다. 미카군 의외로 고집불통이니까요. 말려도 소용없더라고요. 그보다 이츠키씨도 모르셨다니 의외인 걸요.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무슨 일이라면 있긴 했었다. 다만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줄은 몰랐기에 슈는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스승님, 가지마. 가지마. 제발, 버리지 마….
울먹이는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했다. 문득, 슈는 정신을 차렸다. 한동안 잊고 지낸 옛일이 본인을 직접 만나니 새삼스럽게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대로 있다가는 기억의 바다에 가라앉아 질식할 것만 같았다. 쟁반에 차를 올리고, 사탕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아이는 사탕을 좋아했으니까. 순전히 카게히라를 위한 배려였다.
“이거 뭐꼬? 내 금방 갈 건데 번거롭게 해서 미안테이.”
“손님에게 아무런 대접도 안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겨우 이런 걸로 신경 쓰지 마라.”
손님. 낯선 단어였지만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딱 그 정도였다. 미카는 멈칫하며 찻잔을 받아 들었다. 사탕이 눈에 들어왔지만 사탕에 따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러게… 으응, 그렇제. 몇 번 중얼거리다 납득하는 모습을 보는 슈의 마음 역시 편치는 않았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쪽은 슈였다.
“그래서, 청첩장이라도 주러 온 건가?”
“으응. 청첩장이라면 굳이 직접 안 줘도 된다 아이가. 그냥, 오랜만에 스승님 보고 싶어서 왔데이. 겸사겸사 부탁도 하고.”
“부탁?”
미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말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스승님이 축가 불러주면 안 되나?”
머뭇거리는 쪽은 오히려 슈였다. 몇 년 만에 대화를 나눈 것 치고는 제법 막힘없이 흘러가던 이야기가 순식간에 끊겨 버렸다. 미카는 재촉하지도, 제 말을 번복하지도 않고 답을 기다렸다. 침묵이 길어졌다.
슈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의중이 따로 있는 것인지, 왜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인지, 무엇보다 왜 자신은 쉽사리 대답을 못하는지. 과거 같은 유닛이었던 후배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다. 친분이 있으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슈는 망설였다. 한참동안 답이 없자 미카가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곤란하게 했는갑다… 스승님 일 바쁠 텐데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
“아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미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색이 다른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예전부터라도 슈는 미카에게 약했다. 이번에도 어쩐지 그 페이스에 휘말린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겨우, 축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슈는 미카의 시선을 피했다.
“여전하구나.”
미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까지의 반짝거림은 사라지고, 쓸쓸해 보이는 미소가 자리해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2.
전혀 줄어들지 않은 사탕 중에서 하나를 골라 껍질을 깠다. 그 아이의 한쪽 눈동자 색을 닮은 노란색 사탕이었다. 그렇게 사탕을 좋아하던 미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탕을 두고 차 한 잔만을 비우고 돌아간 지 오래였다. 그가 떠나기 전 하고 간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3년은 사람이 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공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카가 살갑게 스승님이라고 불러오며 재잘재잘 떠들었기 때문에 망각했을 뿐. 정신이 없어서 흘려 넘겼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금방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었다. 미카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리라. 슈는 어렴풋이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카게히라 미카의 인생에서 이츠키 슈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싶을 정도로 슈는 그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었다. 그렇기에 미카가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슈로부터의 독립이었다. 3년 전의 일로 신체적인 독립은 이루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어중간하게 끊어진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너는 언제까지고 어린 아이가 아니다. 인형도 아니야.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더 이상 나에게 의존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이 불씨가 되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 관계였다. 슈는 미카가 보이는 비정상적인 집착을 버리고 그 자신만의 생을 찾아주고자 했다. 그 전에도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기에 이번에는 강경하게 나서자고 결심한 것이 화를 불렀다. 떠나기 싫은 자와 떠나보내고자 하는 자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떠올리기도 괴로운 기억이 물 밑에서부터 진득하게 올라왔다.
“스승님 갑자기 왜 그러는데, 내 질린 기가. 내가 귀찮았나? 그럼 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제발 가라고는 하지 마래이….”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졸업하기 전에 결론지었어야 할 일을 너무 오래 끌었을 뿐이다.”
“내는 스승님 밖에 없는데… 다른 건 필요 없다, 스승님이랑 계속 있을 수만 있으면….”
“카게히라. 나는 언제까지고 너의 보호자가 되어줄 수 없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따라오던 아이였다. 왜 그렇게 헌신하는지 모를 정도로 자신을 잘 따랐던 미카를 지켜보면서 슈는 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해왔다. 비틀린 관계의 종말을 고할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언제, 어떻게, 상처 받지 않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러나 그 순간은 쉽사리 오지 않은 채 한 해 한 해가 흘러갔다. 아이를 볼 때면 자꾸만 마음이 약해졌다. 연민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두려웠는지. 순간적으로 슈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의 속에서부터 똬리를 튼 이기적인 감정의 존재를 알아챈 순간이었다. 카게히라 미카가 제 곁에서 사라지는 현실이 무서워서 그의 헌신을 이용해 붙잡아 둔다. 그래놓고서는 그의 독립을 걱정한다니,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 슈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스승님은 아무 것도 모른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
“내 행복은 스승님이랑 함께 있는 건데.”
“그만 해라.”
“싫다!”
“카게히라. 거기까지다.”
미카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더 이상 입을 열어 슈에게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이별을 납득하기도 싫었다. 미카는 슈의 인형으로만 남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그의 스승이 자신을 계속 데리고 있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었다. 슈가 없는 다른 미래는 필요 없었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슈는 애처로울 정도로 매달리는 아이를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밀쳐 냈다. 그가 그려오던 이상적인 결말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상처만 가득 남은 끝이 되고야 말았다. 미카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그 사이사이 들려오는 히끅거리는 소리. 차마 서럽게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참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슈는 돌아섰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슈는 미카의 은퇴 선언을 TV로 들었다. 마음이 갑갑해졌다. 스승님 말고는 다 필요 없다고 울먹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직업까지 그만 둔 미카를 매정하게 두고 온 것이 정말 잘 한 일이었는지, 혼란 속에서 슈는 도망치고 말았다. 저답지 않은 방식이었으며 오히려 구질구질하다고 그는 조소했다.
어찌 되었든, 결론적으로 보면 잘 된 일이라고 위안 삼았다. 마침내 미카는 이츠키 슈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해피엔드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슈가 원하던 결말이었다.
3.
그 이후로 미카는 종종 슈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했다. 슈는 굳이 만류하지는 않았다. 식 준비로 바빠야 할 네가 이렇게 빈둥거려도 되느냐고 핀잔을 하고 방으로 돌아가 제 할 일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럴 때면 미카는 그를 따라 들어가 재잘재잘 떠들거나, 일이 많은 날에는 거실에서 홀로 TV를 보거나 하였다. 평화로운 일상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라 꼭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 생각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지만.
“와, 그래도 다행이데이. 솔직히 스승님이 거절하면 우짜노, 하고 앞이 깜깜했다 아이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예의를 차린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슈가 대답하지 않고 코웃음을 치자 미카는 손사래를 쳤다.
“에에? 진짜데이!”
지금의 이츠키 슈는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연락까지 끊긴 슈를 찾아은 이유는 미카에게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슈는 고민하면서도 제안을 승낙하였다. 두 번이나 소중한 것을 내치기에는 여리고 상냥한 사람이었으니. 축가라는 핑계를 대고 순전히 스승님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미카의 소망도 함께였지만 슈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당황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과거의 카게히라 미카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묶여있지 않았다. 전화벨소리가 울리자 미카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보세요. 내 잠시 나왔다. 응? 도착했나? 알았다. 좀 있다가 갈게. 단어 사이사이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돌의 영업용 미소 같은 게 아니었다.
카게히라 미카는 행복해 보였다. 슈는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고 손을 움직였다. 화면 속 오선지는 어떤 명령어도 입력되지 않은 채 멈춘 지 오래였다.
“가 보거라.”
“아직 시간 괜찮데이. 내 좀만 여기 있다 갈란다.”
“어서 가. 그리고 다음부터는 오지 말거라. 너를 위한 곡 정도는 내 이름을 걸고 완벽한 무대를 선보일 테니 걱정 말고.”
“…여전한 건 스승님 아니가.”
“무슨 소리냐.”
슈는 화면으로부터 눈을 돌려 미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저 아이가 언제부터 저런 눈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어지는 말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됐다. 아무 것도 아니데이.”
4.
이츠키 슈는 겁쟁이다.
멈춰버린 시간축에서 맴돌고 있는 쪽은 슈였다. 이미 까마귀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 버렸는데도 그는 과거에 얽매여서는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은 지옥까지 함께 가겠다는 네가 고마웠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네가 사랑스러웠다. 평생을 네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욕망과 이성이 시시때때로 대립했다. 저런, 슈 군이 미카쨩에게서 느끼는 건 연민이야. 슈 군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불쌍한 미카쨩. 누구보다 빛날 수 있는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누굴까? 그런 주제에 정말로 거기서 만족을 느끼는 거야?
못된 아이로구나.
깨닫는 순간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제 안의 이중적인 태도가 끔찍했다. 차마 이츠키 슈는 제 욕심만을 위한 행동을 계속하지 못했다. 쌓이는 죄책감과 비례하여 커지는 감정을 어찌 하지도 못한 채로 결국 어중간한 상냥함은 파멸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다시 만난 카게히라 미카를 계속 마주하는 것은 제법 괴로운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찾은 미카, 이츠키 슈가 존재하지 않는 그의 세상. 다행이라는 생각 한편으로는 그를 보면 볼수록 끊어내지 못한 감정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차라리 너를 계속 붙잡아두는 쪽이 좋았을까. 나만을 바라보도록,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볼 것을. 그제야 슈는 깨닫고 말았다. 너무나도 늦어버려서 접어두어야 할 마음이었지만.
카게히라 미카를 향한 감정은 연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이었다.
5.
슈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본래부터라도 그는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외출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차림새에 더더욱 신경을 썼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그는 어색하게 웃어 보았다. 굳은 표정으로 무대에 설 수는 없었다. 거기다 오늘은 길일이 아니었던가.
프로듀서가 아닌 가수 이츠키 슈로서의 일은 오랜만이었다. 그렇다고 오랜만이라는 변명으로 부족한 무대를 꾸미는 일은 그의 철칙에 어긋났다. 그의 심정이 어떠하고 공백기가 얼마만큼 길든, 이츠키 슈는 프로였고 이번에도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야 했다. 다행히 축가를 부르는 자리에는 복잡한 무대 장치도, 잘 다듬어진 구성도 필요 없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제 목소리뿐이었으니 부담은 덜했다. 슈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식장 위치를 확인하고는 집을 나섰다. 청첩장은 곱게 접힌 채로 식탁 위에서 자리를 지켰다.
미카는 시선이 쏠리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이름 모를 성당에서 행해진 결혼식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의 결혼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진행되었다. 우르르 몰리는 기자들도, 카메라의 셔터 소리도 없었다. 외부인의 개입 없이 하객이라고는 신랑신부들의 가족들과 지인들만으로 구성된 식은 단출했다. 게 중에는 반가운 얼굴들도 더러 있었다.
미카는 식장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 쪽 머리를 넘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짝짝이 눈이 보기 싫다고 긴 앞머리를 고집하던 과거가 문득 겹쳐졌다. 아이는 성장했다. 분명한 변화였다.
“스승님!”
슈를 발견한 미카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한 걸음 다가가 물끄러미 그 얼굴을 내려다보자 미카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활동할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함 까봤는데… 안 어울리나?”
“그럴 리가. 잘 어울리는구나.”
습관적으로 그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던 슈는 재빨리 손을 내렸다. 미카가 정확했다. 변하지 않은 쪽은 자신이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렇지만 이제는 변할 때였다. 카게히라가 원하던 대로 관계의 완전한 종말을 고할 때였다. 미래를 위해 과거는 청산해야만 했다.
“결혼 축하한다, 카게히라.”
그 짧은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몇 번이고 연습했다. 어떤 표정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담담해 보일까. 어쩌면 축가보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지도 몰랐다. 연습의 성과는 있었다.
“이츠키 씨도 와 줘서 고맙데이,”
‘이츠키 씨’, 그 한 마디가 주는 의미는 컸다. 이것으로 정말 끝이었다. 참으로 건조하게 정리되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발키리의 종막에 어울렸다. 두 사람을 묶어주던 고리는 마침내 끊겨 이제, 서로는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은 채로 생을 살아가게 될 터였다.
슈는 굳이 가장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자리를 권하는 이들에게는 제가 나가야 할 차례는 한참 뒤니 상관없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입장하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게 늘어진 면사포가 살랑거리며 흩날렸다.
언젠가는 신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네가 입었으면, 하고 바랐던 날도 있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었지만. 더 이상 향해서는 안 되는 감정을 고이 집어넣으며 슈는 지난날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마침내 둥지를 떠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카게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