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 월하
무너지는 순간.
나는 너의 반짝이는 두 눈을 봤다.
-마지막 세계의 왈츠를.
이츠키 슈 x 카게히라 미카
눈이 내린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열기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큰 도로의 전광판에는 겨울임을 알리는 코트 같은 두꺼운 외투의 선전이 잔뜩 흘러나왔다.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럴.
벌써부터 한 해의 끝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거리에 잔뜩 스며들어있었다.
'Knights'의 도움을 받아 연말의 라이브를 무사히 마친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그 기간 동안은 수예부는 물론이고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였기에
나도, 그 아이도 지쳐있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라이브가 끝나는 날, 황색과 푸른색의 반짝이는 눈을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내는 스승님의 세계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기가.' 라고.
나는 조용히 감기는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힘없이 무너지는 그 아이의 몸이 나의 두 팔에 가득 안긴다.
무대의 막이 닫히고, 그 아이의 눈도 닫힌다.
그리고, 나의 세계도 닫히는 것만 같았다.
***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일어난다.
두 눈을 반짝이며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마드모아젤에게 인사한 후, 작업을 하는 나의 옆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내가 손을 멈추고 입을 열어 '식사할까.' 라는 말을 내뱉으면 눈꼬리를 반달처럼 휘며 아름다움 미소를 짓는다.
그러곤 식사를 하다 중간에 꾸벅꾸벅 고개가 떨어진다. 최근 잠이 늘은 그 아이는 일어난 후 시도 때도 없이 조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느질 하는 것을 보는 순간에도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고 곧잘 잠을 잔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최근에 잘 시간도 없이 바빴으니 그저 피곤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자신도 종종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인형'이었다.
태엽을 누군가가 돌려줘야만 움직이는,
누군가의 손에 얽혀있는 실로 움직여지는,
인형.
자신을 인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가끔씩 너도 한 명의 인간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정말로?
***
또 자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일주일 전에는 14시간,
어제는 17시간.
하루에서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의 비중이 늘어간다.
그 아이가 눈을 뜨고 있는 것보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더 많이 보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불안감을 느낀다.
'점점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나서, 영원히 잠을 자버리는 것이 아닐까.'
머릿속에 흘러가는 생각이 나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그 아름다운 두 눈이 암흑에 영원토록 싸여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싸이기 전에 내가 그 아이의 반짝거리는 눈과 나의 눈을 마주볼 수 있는 방법을.
그 아이의 방 문을 두드리면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방금 깬 얼굴로 비척비척 걸어 나온다.
나는 입을 열었다.
"여행을 갈까."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이었다.
***
여행이라고 해도 그저 마을을 이곳저곳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 아이도 집 밖에 라곤 학교와 아르바이트 장소뿐이었고,
나 또한 집 밖에 나가는 시간은 별로 없는 인간이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산책 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두 사람만의 추억이 되어버리는 여행이 되는 셈이다.
밖은 눈인지 비인지 모를 -눈에 더 가까웠다- 것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산을 써야했다.
목도리, 두꺼운 외투, 장갑.
모든 것을 챙기고 그 아이의 방에 가서 그 아이를 깨운다. 느리게 눈을 뜨고 몇 초 동안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내 손에 들린 옷가지들을 보곤 이내 오늘이 외출하는 날인 것을 떠올린 듯 했다.
변명을 하지 못해 작게 열렸다 닫혔다하는 입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에 들린 옷가지들을 그 아이의 쪽으로 건네주며 입고 나오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입을 닫고 방긋 웃어보였다.
우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마드모아젤을 앉혔다.
곧이어 나오는 그 아이는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운 마드모아젤에게 인사를 하고 내 옆으로 붙어 섰다. 우산을 들지 않은 그 아이의 코에, 어깨에, 손목에, 발등에 눈이 한 송이씩 닿고 있었다.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주제에 눈이 오는 것을 보고도 신기하다는 듯이 곧이곧대로 맞고 있는 것을 보면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들고 있던 우산을 그 아이에게 걸쳐주면 그 아이와 나의 시선이 마주친다.
“스승님, 내가 들어도 되제?”
웃으며 나의 손이 들고 있던 우산을 자신의 손으로 옮겼다.
오랜만에 나와 보는 밖이었지만 달라진 것은 그렇게 많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바뀐 것은 입고 있었던 옷이 여름에서 겨울용으로 길어지고 두꺼워졌다는 정도이려나.
***
둘이서 걷기만 해도 할 것은 많았다.
그 아이가 조금 큰 길에 나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큰 길에 나가서 거리에서 파는 붕어빵 같은 것을 사 먹이고, 새롭게 나온 옷들을 구경하거나 가게에 새로 들어온 원단이나 장식들을 구경하면서 다음 옷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렇게 걷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눈이 감길 뻔 했던 아이였지만 오랜만에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잠으로 허비하고 싶지 않다며 그때마다 앉아서 쉬다 갈까, 라고 묻던 나의 말에 고개를 흔들흔들 젓고 나의 손을 이끌며 앞으로 걸었다.
오전 11시쯤에 집에서 나온 것 같은데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파랗던 하늘에 덥히는 붉은 태양의 색이 낮을 잠재웠다.
곧 밤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참새들의 지저귐보다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채웠다. 눈을 밝히며 날아가는 검은 까마귀를 보며 마치 그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눈이 그친 하늘을 보며 아이는 들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왼쪽 손에 우산을 들고, 오른쪽 손으로는 빈 나의 왼손을 잡았다. 손을 앞뒤로 흔들며 아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 둘씩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의 수다스러운 점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있제, 내 엄청 즐거웠데이. 스승님이랑 밖에도 나와 보고. 무슨 이리 행복한 날이 다있노, 싶었다. ….”
구구절절, 물 흐르듯 이어지던 말이 붕어빵을 먹었다는 얘기를 하다 뚝 끊어졌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느껴지면서 옅은 흐느낌이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카게히라…?”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 같았다.
아이가 이토록 서럽게 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승님…, 내 욕심 부리면 안되는거 아는데…, 이러면 안되는 거 아는데…. 내 스승님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 내 다시 잠들기 싫다…! 스승님한테서 잊혀지기 싫다….”
이 정도도 이 아이에게는 욕심이었던 것이었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란다.
인연을 맺었던 사람과 헤어지고, 금방 헤어져버리는 인생이라니, 덧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아이의 뺨에 가져다 댄다.
마드모아젤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금방이라도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아이를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드모아젤도 용서해 주겠지.
양 손으로 아이의 뺨을 잡고 무릎을 낮춰 내 시선과 아이의 시선을 맞춘다.
입을 열어야했다.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도 헤어지기 싫다, 고.
내가 뺨을 잡자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마드누나까지 내려두고 내한테 이렇게 한다는 건, 내랑 헤어지기 싫다고, 내를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거 맞제?”
아이가 푸흐흐 웃었다.
“내는 그 말이면 됐다. 스승님이 내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만 않는다면 내는 웃으면서 잠들 수 있다. 잠드는 것도 괜찮네, 스승님의 이런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조용히 올라오는 아이의 양손이 나의 뺨을 스치지도 못하고 아래로 추락해버린다.
갑자기 밀려오는 힘에 양손으로 잡고 있던 아이의 얼굴을 놓쳤다.
한꺼번에 온 근육의 힘이 빠져 쓰러진 아이의 얼굴이 가슴팍에 닿는다.
온 힘을 다해 무너지는 아이의 몸을 끌어안는다.
여윈 몸 위로 팔이 닿는다.
뼈가 느껴진다.
귓가에 들리는 숨소리에 따라 닿아있는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참고 참다가 결국 잠들어버린 것이겠지.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지만 느껴지는 숨소리에 안도감을 표했다.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마드모아젤과 우산을 아이의 손에 들리고 아이를 등에 업었다.
너의 몸이 무너지던 순간 나에게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황색과 청색으로 빛나는 너의 눈을 나는 보았다.
집에 도착하면 바이올린을 켜자.
너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마지막 세계의 왈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