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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히또

* 피스틸버스 AU

 “스승님.... 내 요새 등이 이상타. 아프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한번 봐주면 안 되나?”

 “카게히라. 상의를 벗어 보거라.”

 

 스승이라 불리는 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게히라가 티셔츠를 벗어 등을 보여주었다. 척추가 끝나는 지점을 시작으로 무언가 자라나고 있었다. 척추 끝에서 녹색을 띈 굵은 가지가 굵게 올라오다 얇은 가지로 쭉쭉 뻗어가려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지면 찔릴 것처럼 가시도 드문드문 보였다.

 

 “줄기.... 아무래도 각성한 것 같구나.”

 “각성? 내 피스틸이란거가?”

 “당분간은 계속 등에 아픈 감각이 느껴질 것이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구나. 너는....”

 “그래도, 기분이 좋다.... 그라믄 내도 등에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거 아이가. 내는 예쁜 꽃을 피우고 싶다.”

 “긍정적이라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가. 아무튼, 옷을 입거라. 몸이 식는다.”

 “응아앗, 알았데이.”

 

 사람은 보통 10대 중반에 각성을 거치는데 이때 피스틸과 스테먼으로 나뉜다. 피스틸은 각성을 통해 약간의 통증을 동반하며 몸에 줄기가 돋아나는데 굵은 나무줄기가 돋거나 얇게 꽃줄기가 돋기도 한다. 보통 아무 꽃이나 피울 수 있는 줄기가 자라나지만 특정 꽃만 피울 수 있는 줄기가 자라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리고 꽃을 가진 스테먼과 관계를 맺으면 줄기에 꽃이 피어나는데 스테먼이 누구냐에 따라 피스틸의 몸에 피어나는 꽃이 달라진다. 만약 같은 꽃을 피우는 피스틸과 스테먼이 만나면 운명의 상대라고 봐도 될 정도로 상성이 잘 맞물린다고 한다. 그리고 소수로 그 어느 쪽도 아닌 케일릭으로 남기도 한다. 케일릭은 꽃을 피울 수 없다. 스테먼은 피스틸과 달리 각성 때 딱히 신체의 변화는 없다. 그래서 피스틸과 관계를 맺기 전까지 자기가 무슨 꽃을 피우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기운이 강한 스테먼은 태몽을 꾸듯이 꽃을 피우는 꿈을 종종 꾸거나 자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꽃이 있다거나 또는 특정 꽃에 유독 끌린다거나 해서 자신이 피우는 꽃을 짐작하기도 한다.

 

 “스승님은 각성한 적 있나?”

 “글쎄.... 적어도 줄기가 자라지 않은 걸 보니 피스틸은 아닌 것 같구나. 그보다 카게히라. 이걸 가지고 있어라.”

 “응아? 이게 뭔데?”

 “후후훗, 미카쨩. 등의 줄기가 다 자랄 때까지 아플 텐데 진통제 가지고 있다가 참기 힘들면 먹으라고 슈군이 챙겨주는 거란다. 혹시 모르니 늘 지니고 있으렴.”

 “아아, 고맙데이. 스승님, 그리고 마드누나.”

 “카게히라. 각성이 끝날 때까지 당분간 라이브는 쉰다. 너의 상태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무대가 완벽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각성이 끝나면 다시 활동한다.”

 “스승님. 내는 괜찮은디.... 통각에 둔해 아픈 거 모른다 아이가.”

 “Non! 인형을 무리시키는 건 인형극에 누가 된다.”

 

 이츠키는 입을 다물고 바늘을 들었다. 카게히라는 진통제를 만지작거리다 학교 숙제가 있다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츠키는 카게히라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내 바늘을 내려놓았다. 사실 이츠키는 어렴풋이 자기가 스테먼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카게히라의 등을 본 순간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꽃이 떠올라 마음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인형의 금을 비집고 자라난 줄기를 보듬어 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가시로 된 갑옷 속에서 피어난 장미꽃을 보는 것 같구나. 그 장미를 피워낸 정원사는 만개하는 한 송이에 매료되어 꽃을 피우는 것을 멈추지 않겠지.”

 “슈군은 장미꽃을 좋아하지?”

 “.....내가 장미를 피워내는 스테먼인 걸 알고 말하는 건가?”

 “후후훗, 슈군이 정말로 장미꽃을 피워내는 정원사면 좋겠네.”

 

 처음 카게히라를 보았을 때 새로운 인형을 발견해서라는 건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 마음 깊숙이 이 아이를 원한다는 큰 갈망이 앞섰다. 비록 손봐야 할 곳이 많은 인형으로 여기지만 그걸 빌미로 자기 곁에 두고 싶고 지도해준 대로 움직이고 제가 만들어 준 의상을 입고 있을 때 만족감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런데 카게히라의 등에 돋아난 가시나무를 보자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직감이 들었다.

 한편, 방에 들어 간 카게히라는 얼굴 확 붉어졌다. 이왕이면 피스틸로 각성하면 좋겠다고 어릴 때부터 바래왔는데 이루어졌다. 주변에 어른들 중에 등에 아름드리 꽃을 가득 피운 사람을 본 적 있는데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자신도 저렇게 등에 꽃을 피우길 원해왔고 무슨 꽃이 피어날지 기대되었다. 다시 옷을 벗고 거울 앞에 비스듬히 서서 살펴보았다.

 

 “응아? 자세히 보니 가시가 있구마? 빨간 장미꽃 피면 참말로 이쁘겄네.”

 

 막 자라기 시작한 가시나무를 찬찬히 뜯어보던 카게히라는 다시 옷을 입기 위해 티셔츠를 집어 들며 흘리듯 작게 중얼거렸다. 함께 지내오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정도 체온도 물들어 온전히 자신의 온기만을 지니길 바라는 그 사람에게 보내는 혼잣말이다.

 

 “스승님 같은 사람이 내 스테먼이면 좋겄는디.....”

 

 그리고 며칠 동안 카게히라는 줄기가 다 자라날 때까지 불편한 생활을 보냈다. 등의 통각이 점점 괴로워 통각에 둔한 카게히라라도 일상생활에 좀처럼 집중 할 수 없었다. 이츠키의 말대로 당분간 [Valkyrie]의 활동을 쉬기로 한건 잘한 선택이었다. 일주일정도 지나 가시줄기가 어깨 죽지까지 자라나고 녹색 잎사귀도 조금씩 돋아날 즈음 이츠키가 카게히라의 등을 봐주었다.

 

 “오늘 체육시간에 아있나, 옷을 갈아입는데 같은 반 머슴아가 언제 꽃 피울거냐고 물어보는 거 있제. 그리고 글마가(그 녀석이) 옷 벗어제끼면서 지는 꽃 이 만큼 피웠다고 자랑하믄서 내 보고 꽃 한 송이 없다고 뭐라카는데 윽수로 미깔시럽드라.(얄밉다는 뜻)”

 “꽃이 없다고 나쁜 건 아니란다. 넌 이제 막 각성이 끝났고.”

 “그래도 마, 가지만 있어가꼬 내 나무가 쪼까 허전하다 아이가? 그케도 내는 내 나중에 남 부럽지 않게 예쁘게 꽃 피울끼다. 스승님은 피스틸은 아니라했제?”

 “.....카게히라.”

 “스승님, 와그라노?”

 

 카게히라의 등에 손을 얹어 살며시 가지를 쓰다듬으며 슈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카게히라. 나는 장미꽃을 피워. 바로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내 안에는 이미 영겁의 윤회를 반복하듯 수많은 장미꽃이 몇 번이고 피었다 지며 자리 잡고 있구나.”

 “참말이가? 그라믄 스승님....”

 “그래. 정원사가 되어 화원을 가꿀 수 있다.”

 

 이츠키는 뒤에서 카게히라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카게히라는 제 허리에 둘러진 그의 팔을 손을 들어 맞잡았다.

 

 “참말로.... 스승님이 장미꽃 피웠으면 좋겠다.”

 “네가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언제든지.... 한 점의 흠도 없는 최상품의 장미만 피워 낼 거야.”

 

 카게히라가 조금 쑥스러운지 목덜미가 조금 붉어졌다. 슈는 고개를 조금 내려 그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평소에 전혀 접할 수 없었던 이츠키의 행동에 카게히라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갑자기 상냥한 스승님이라니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카게히라는 놀라면서도 기뻐서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와아..... 이게 꿈이가 생시가, 이거 꿈 아이제? 이대로 스승님이 온전히 내만 봐주면 좋겠다. 아무한테도 양보 몬한다. 스승님은 나만의 스승님이면 좋겠다.... 참말로 좋아한데이.’

 

 ‘깨진 인형의 금 사이로 비죽이 솟아난 나무에 가시덩굴 밖에 없더라도 내 손길을 거치면 진홍빛 장미가 피어나겠지. 난 거기에 매혹되어 한 송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꽃을 피우는 정원사가 되어 한 그루의 장미 나무를 근사하게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 막 자라난 이 작은 나무는 오직 나만이 장미를 피울 수 있어. 너는 내 나무야. 카게히라.’

 

 “스승님. 약속하자는 뜻으로....”

 “......”

 

 카게히라는 몸을 돌려 이츠키와 눈을 마주했다. 이츠키는 잠시 풀었던 팔을 다시 감아 카게히라를 안아왔고 카게히라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음으로써 정원사의 장미나무 가꾸기가 약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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